(읽을거리)두바이의 인공섬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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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두바이의 인공섬을 보며,

느끼바가  많습니다.

 

 

황무지(사막)에서 물을 끌여들여 새로운 거대한 인공섬을 만드는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련자료들과 관련기사들을 인터넷에서 검색 해 보았습니다.

 

왜 갑자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네요!

역사앞에서 ...  (미화는 안되지만, 그 분의 이상은 존경합니다. ) 

좀더 부강한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을 꿈을 현실로 바꾸는 지도자

비젼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그것이 무모한 일인지는 모르나 안 하는 것 보다는 낳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지도자가 생겼으면 바람입니다.

관련 정보와 사진들입니다.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건강하시고

 

-푸른하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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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인공성 리조트계획 발표

 

두바이는 Palm Tree Islands (Palm Jumeirah, Palm Jebel Ali ) 외에 또 하나의 ‘인공섬 리조트, man-made island resort’ 계획을 발표했다. ‘Globe Archipelago’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육지로부터 8km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에 세계지도 형상으로 만든 인공선 약 30개를 조성, 각각의 섬에 호텔과 주거단지, 오락시설을 입주시킨다는 계획으로 각 섬들의 크기는 4만~80만㎡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총 20㎢의 지역에 걸친 해상에 건설될 예정이다. 두바이 Rashid항과 Palm Jumeira 사이에 위치할 예정이 Globe-Archipelago 는 Palm Island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Nakheel사가 역시 사업을 주관하고 있고 parsons corp가 컨설팅을 맡고 있다. 현재 인공섬 건설을 위한 준설, 방벽공사에 8개사가 응찰한 상태이며, 총 사업예산은 미화 4억900만달러, 공사 예정기간은 20~22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다. ㅇ 응찰업체명단 - Achirodon Cont (UAE/ 벨기에 합작) - Bel Hasa Six Cont (UAE / 영국 합작) - Dutco Balfour Beatty (벨기에) - Jan de Nul (벨기에) - Dredging Int’l (영국) - Ballast ham Dredging (네덜란드) - Vanoord ACZ (네덜란드) - Boskalis Westminster (네덜란드) [ 보고자 : 두바이 무역관 염승만 과장 ] [ 자료원 : Meed Magazine , Vol 47 ]

 

 

 

위용 드러낸 두바이 인공섬 '팜 주메이라'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앞 바다에 조성되고 있는 인공섬 ‘팜 주메이라’가 8일 윤곽을 드러냈다. 국영기업 나크힐 개발은 이날 현장 사진을 공개하고 오는 11월 첫 입주자 4000명이 섬에 정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자수의 모양을 본떠 만든 팜 주메이라는 2010년 완공 예정인 인공섬 도시로, 호텔 32곳과 수십개의 쇼핑·관광 상점이 들어설 예정이며 6만명이 거주하게 된다.

두바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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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생존를 위한 통찰력,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과감한 개방정신이 두바이를 기적의 땅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바다를 메워 인공섬을 만드는 팜 프로젝트 모형도.

 

 

 

 

 

 

 

 

 

- 두바이 개혁의 지도자 관련 기사 셰이크 모하메드

 


통찰·상상·실천력 갖춘 천재적 CEO형 지도자
각국 전문가 2000명으로 싱크탱크 구축

 

‘당신의 눈망울 속에 나를 담아주세요/ 그 눈망울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어쩔 수 없더라도 그 눈 깜빡이지 마세요/ 당신에게 잡혀 있는 나를 떨어뜨리지 마세요

슬프더라도 눈물 흘리지 마세요/ 그 눈물이 홍수되어 쏟아지면 나도 함께 쓸려가 버리니까요…’.

 

오늘날 두바이라는 ‘꿈의 나라’가 건설된 이면에는 딱딱하고 거창한 국가발전 리포트가 아니라 바로 이같은 시(詩)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리잡고 있다. ‘Place me in your eyes’란 제목의 이 시를 지은 작가는 바로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주도하는 두바이 왕세자 겸 UAE(아랍 에미리트연합) 국방장관인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56)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와 함께 자랐으며 지금도 시를 통해 영감과 상상력을 얻는다고 했다. 현재 두바이에서 진행되는 온갖 기발한 이벤트와 건축물은 바로 그의 또다른 시작(詩作)인 셈이다.

 

1995년 그가 왕세자로 지명된 뒤 10년 동안 두바이는 혁명적 개조(改造)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10년간 두바이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0억달러에서 200억달러로 폭증했다. 두바이의 석유 부존량이 2020년쯤이면 바닥날 것으로 판단한 셰이크 모하메드 왕세자가 기발한 관광·금융·무역·전시회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결과다.

 

‘두바이의 CEO’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통찰력,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먼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상을 머리에 그릴 줄 아는 상상력, 불가능은 없다는 자세로 일사천리 밀어붙이는 실천력 등 리더십의 3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남자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1949년 셰이크 라시드(Sheikh Rashid bin Saeed Al Maktoum) 왕자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매우 활동적이어서 걸음마를 익히자마자 집안의 모래 정원에서 공을 차곤 했다. 이후 자라면서 아랍 전통 스포츠인 매 사냥과 승마를 익혔다. 그는 “내 피 속에는 말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 흐르고 있다”고 자주 말했으며 그런 열정으로 직접 수차례 국제승마대회에서 우승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 두바이를 세계 제일의 경마국가로 만들었다.

 

 

케임브리지 벨 스쿨서 영어 배워

 

6세 때 데이라에 있는 알 아미디어란 초등학교에서 공식 학교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어, 아랍어, 수학, 지리 등을 두루 익혔다. 1958년 할아버지인 셰이크 사에드가 죽고 아버지인 셰이크 라시드가 지도자가 됐다. 셰이크 라시드는 오늘날 두바이 개혁의 선구자로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셰이크 모하메드가 아버지의 뜻을 완성시키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버지는 제왕학(帝王學) 차원에서 셰이크 모하메드로 하여금 은행원, 건축가, 상인, 학자 등 다양한 엘리트 집단과 자주 만나도록 배려했다. 1965년 두바이에서 정규 학교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이듬해 아버지의 지시로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유명한 영어학원인 벨(the Bell) 스쿨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사귀게 된다. 틈틈이 쌓아온 승마 실력으로 1967년 승마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1968년엔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연방제 국가 설립에 합의하면서 UAE가 본격 출범하자 셰이크 라시드는 아들을 다시 영국으로 보낸다. 런던에서 남쪽으로 40마일 정도 떨어진 앨더샷에 있는 ‘몬스 사관학교’에서 6개월 동안 군사훈련을 받은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다.

 

귀국한 그는 첫 번째 공직인 두바이 경찰국장 자리를 맡았고, 1971년에는 22세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후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 침공, 인근 부족국 앗샤리카에서 발생한 쿠데타 기도,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비행기 납치사건 등을 잇달아 처리하면서 그는 국제감각을 키웠다. 통치체제가 흔들릴 위기도 있었다. 그는 그때마다 “먼저 상황을 지켜본다. 그리고 사람들 표정을 읽고 결정 내린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1990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1995년에는 두바이 리더이자 맏형인 셰이크 막툼이 가장 영특한 동생인 셰이크 모하메드를 왕세자로 지명한다. 그는 이때부터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온갖 혁신적인 국가건설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왕세자로 지명되자마자 그는 두바이의 21세기 비전을 발표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다(It will be full speed ahead)”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있으면 바닥날 석유만 믿고 있을 수 없다. 석유 이외에서 돈을 벌어라. 그것도 신속하고 획기적으로 벌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1995년부터 혁신적으로 개조 작업

 

사실 1966년 석유 발견 때부터 석유 고갈을 먼저 걱정한 것은 셰이크 모하메드의 아버지인 셰이크 라시드였다. 그는 석유 수입을 학교·병원·도로 등 각종 인프라 건설에 투입했다. 이를 이어받은 셰이크 모하메드도 1996년에 ‘2011년까지 100% 탈(脫)석유 경제구조를 만들자’는 정책을 마련했다. 지난해 GDP의 93%가 무역·관광·부동산·건설·금융·서비스 등 비석유 분야에서 나올 정도로 그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에서는 실패를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서 규제철폐에 총력을 기울였다. 중동에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시장으로 알려졌던 두바이에 외국기업을 대거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4곳의 자유무역지대를 지정해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CNN, 로이터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 등 두바이를 ‘외자유치 모범국’으로 만들었다. 현재 두바이에는 용적률(容積率)이나 층고 제한이 거의 없어 건축업체에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UAE 연방법상 외국인이 땅을 매입할 수 없지만, 모하메드는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나크힐(Nakheel)을 통해 외국인이 99년간 장기 임대를 통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엔 일부 지역에 한해 직접 매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금융규제도 거의 없어 은행은 연 4% 이하의 낮은 금리로 담보비율(LTV) 75%까지 대출해준다.

 

이와 함께 셰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 국제공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독특한 쇼핑 행사도 열었다. 3월에 있는 두바이 쇼핑 페스티벌은 6개의 쇼핑몰에서 벌어지는 무관세 할인판매 행사다. 이맘때면 세계적인 부자들이 두바이로 몰려든다. 그는 400만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두바이 월드컵 경마대회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4% 저금리로 75%까지 부동산 대출

 

그는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노예 상태로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아이디어는 멈출 줄 몰랐다. 비수기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두바이 섬머 서프라이즈’란 이름의 특집축제를 여는가 하면 인터넷 시티, 미디어 시티, 인공 섬, 버즈 두바이 등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프로젝트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포부를 실현시킬 전문가 집단을 구축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을 주축으로 세계에서 모여든 2000명의 전문가들이 ‘두바이 아이디어 오아시스’ 등의 이름으로 그의 뒤에서 싱크탱크를 구축, 다양한 세부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종교와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최고의 기술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유치한다는 게 셰이크 모하메드의 전략이다. 그는 “우리는 비전에 의해 움직이고 용기를 가지고 있다. 내 뒤에는 열심히 일하는 싱크탱크로, 젊은 팀이 있다. 내가 아이디어와 목표를 제시하면 그들은 실행에 옮긴다”라고 말했다.

 

의사결정 빠르고 집행은 신속해

 

그는 하루24시간 두바이에 관여한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들과 긴밀한 연락을 갖는다. 그는 관계자들을 집무실이나 사막 휴양소로 불러 묻고 듣고 토론한다.

 

기자들이 셰이크 모하메드에게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 호텔’에 대해 묻자 그는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긴 하지만 누구의 것이든 복사하지 않는다”며 “두바이에서 추진되는 그 어떤 것도 복사나 복제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초 그의 아버지 셰이크 라시드가 착안한 두바이의 미래상은 관광과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요, 싱가포르와 마이애미, 상트로페(프랑스)가 융합된 도시였다. 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등을 잇는 중개지로서의 전략도 세웠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려면 외국인이 편리함을 느낄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그래서 구상한 것이 인공 신도시였다. 셰이크 라시드는 30년 전에 건축사, 기술자 그리고 비서진을 대동하고 사막의 황무지를 걸어다니며 조사했다고 한다. 간혹 그는 한자리에 서서 지팡이를 모래에 꽂고는 “언젠가 여기에 들어설 항구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꿈을 아들인 셰이크 모하메드가 완성시켰다. 오늘날 두바이에서 30㎞ 떨어진 자유무역지대 제벨 알리에는 지구 최대의 인공항구가 조성되어 있다.

 

두바이는 이렇게 선왕(先王) 라시드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의 의지와 지혜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보다 무엇이든 한발 더 앞서 나갔다.

 

 

10만달러와 빌라가 결혼선물

 

지금 적지않은 두바이 주민은 인공 낙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결혼 선물로 모하메드로부터 10만달러와 빌라 한 채를 받는 것이 기본이다. 많은 보수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자리도 많다.

그래서 셰이크 모하메드에 대한 국민의 신임과 존경은 절대적이다. 두바이 곳곳에는 왕세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두바이 국민은 ‘왕세자의 모든 계획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가령 도심 곳곳에 세워져 있는 낙타와 말의 모형을 보자. 말에 대한 왕세자의 사랑은 대단해서 리조트와 골프장, 호텔 등에 형형색색 공들여 만든 말 모형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장식이 아니다. 말 모형은 매년 정기적으로 정부에서 주관하는 자선 경매행사에 출품되고 이를 통해 얻은 모든 수익은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기금으로 환원된다.

 

그러기에 셰이크 모하메드가 입을 열면 명언이고 슬로건이 된다. 그는 체질적으로 불가능과의 전쟁을 즐긴다. 그는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불가능한 것을 보면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어떤 꿈이든 현실화시킨다”고 말했다.

 

2년 전 ‘e4all magazine’ 창간호 인터뷰에서 “내 아버지는 역사가 쓰여지길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 대해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역사를 썼다”고 말했다. 또 알 사다(Al Sada)라는 잡지 기자와 만나서는 “누구든 10년 앞에 무엇이 벌어질지 예언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앞으로 3년 이내에 두바이는 지금보다 2배는 더 부유해질 것이다”고 선언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지켜졌다.

 

“중동 붐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두바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내가 계획한 것의 10%에 불과하다. 나는 빨리 나머지도 보고 싶다.” 그의 입에는 거침이 없다.

 

그는 개인적으로 약 4000필의 말(馬)을 보유하고 있는 지독한 말 매니아다. 그는 경마대회를 유치하고 열사(熱砂)의 땅에 스키장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스포츠로 세계를 제패할 수 없다면 스포츠로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어떠한가”라고 반문했다.

 

지금도 외자유치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수억달러를 들여 관계 장관을 워싱턴 등지로 수시로 보낸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의 연례회의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그는 개인적으로 해외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가령 최근에 그는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두바이 홀딩스’를 통해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부동산 개발 등을 목적으로 3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때로 강력한 왕권 통치는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들지만 두바이처럼 세계가 시샘하는 꿈의 국가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2년 전 두바이를 방문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간 곳이 두바이”라며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셰이크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고(國庫)와 셰이크 모하메드 형제 4명이 보유한 재산 사이에 실질적인 구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인 경제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모하메드 형제의 재산은 모두 10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가 벌인 프로젝트마다 흑자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일례로 버즈 알 아랍 호텔을 꼽을 수 있다. 하루 1500~7332달러나 되는 숙박료 때문에 흑자가 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셰이크 모하메드 측은 “버즈 알 아랍이 건립된 이유를 생각하라. 에펠탑 없는 파리를 누가 찾겠느냐”고 반문했다. 랜드마크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금융 투명성 제고가 과제

 

여기에 두바이의 금융센터화 기능이 순조로운 것만도 아니다. 지난 2월 UAE 중앙은행은 외국인이 두바이에서 돈세탁을 하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자칫 두바이가 악성 비밀 금융거래의 온상이 되는 건 셰이크 모하메드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JP모건의 투자전문가 하셈 몬타세르는 “투명성 제고야말로 두바이가 당면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두바이는 걸프만 지역 자본주의 국가의 거센 도전도 받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금융센터로 떠오른 바레인은 지난 1월 두바이를 제치고 ‘포뮬러 원(Formula One)’ 유치에 성공했다. 카타르는 방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으로 미국에 손짓하고 있고, 쿠웨이트는 최근 무역협정 등을 통해 미국과 더욱 가까워졌다. 셰이크 모하메드로서는 더 서둘러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비판과 반대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나의 철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바이가 세계의 자본가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자본가들이 두바이를 필요로 하도록 만들겠다”며 “흔히 말하듯 ‘두바이는 세계적인 도시’에서 만족하지 않고 ‘두바이가 세계 그 자체’라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홍섭 주간조선 기자(h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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